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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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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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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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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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짧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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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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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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씨앗들도 열매로크기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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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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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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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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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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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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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 놓구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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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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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줄 모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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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한 얼굴 한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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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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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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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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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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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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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체할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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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이것이우리에게 최선의 삶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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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아온 날처럼,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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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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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버리지 못했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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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잘 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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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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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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줄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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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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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겨진 하루하루를마지막 날인 듯 살수있는 길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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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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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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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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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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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 하나 육신의 정말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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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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콩댐한 장판 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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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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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곳 있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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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수 있는 사람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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뿌듯이 주고 갑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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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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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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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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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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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새벽이 오는 순간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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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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접시꽃 당신 ( 도종환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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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전향미 |
